[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밥은 필요한 사람이 하는 것
[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밥은 필요한 사람이 하는 것
  • 충청매일
  • 승인 2022.07.19 17: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결혼한다고 했을 때 엄마가 제일 먼저 한 말이 ‘밥은 얻어먹고 다니겠다’였다. 엄마에게 있어 남자에게 밥은 얻어먹는 것이다. 평생 밥을 해 온 엄마 처지에서 보면 당연하다. 남자는 밥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오랜 남존여비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살아온 우리는 남자와 여자의 위치와 역할이 다르다. 시대가 변하여 호주제가 폐지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었지만, 여전히 살림은 여자의 몫인 경우가 많다.

요즘도 결혼한 부부의 경우 살림은 여자가 하는 경우가 많다. 출산이라는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부장제의 뿌리 깊은 유전자는 우리의 무의식 깊이 자리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아내와 남편의 위치를 잡아준다.

부부가 맞벌이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줄면서 살림이라는 개념도 변하였다. 그러나 출산은 사회적 인식 변화와는 상관없이 여성에게 가혹한 현실을 안겨준다. 많은 경우 아이의 육아는 부모, 엄밀히 말하면 할머니의 몫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어디에서 할아버지는 찾아볼 수 없다.

아주 오래전부터 방송을 통해서 살림이 여자의 역할이라고 보고 배웠다. 드라마 전원일기 속에 등장하는 화목하고 모범적인 대가족의 부엌은 어머니와 며느리의 공간이었다. 나의 엄마 역시 농사일과 살림 두 가지 일을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농촌의 여인은 살림만 하는 것이 아니므로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하고 밭에 나가 일을 하다가 새참을 준비하고 또 일하다가 점심을 준비하고 또 일하다가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나의 유년의 경험으로 보면 밥은 여자가 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세상에 정해진 것은 없다. 필요한 사람이 하면 된다. 남자 건 여자 건 혼자 사는 사람은 스스로 밥을 해야 하고 빨래와 청소를 해야 한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잘하는 사람이 그 일을 하지는 않는다. 누가 밥하고 살림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방송에 나오는 유명한 남자 요리사들을 보면 여러 가지 요리를 맛있게 만들어 낸다. 그렇게 요리를 잘하니 같이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매일 맛있는 요리를 해줄 것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집에서는 요리를 하지 않는다. 남편보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아내가 한다.

그렇다고 아내는 요리와 청소와 빨래를 좋아할까. 아니다. 아무도 안 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으니 해야 한다.

지인 중에 아침을 꼭 먹어야 사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아침을 챙겨 먹기 위해 아침은 지인이 책임진다. 생선을 굽고 계란후라이를 하고 간단한 국을 끓인다. 아침에 이 정도면 진수성찬 아닌가. 그 집은 아침을 꼭 먹어야 하는 지인 덕분에 푸짐한 상이 차려진다. 아침밥을 하는 것 외에 책임지는 살림이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난 아침을 꼭 먹어야 하니 밥을 하라고 아내를 닦달하지 않고 밥을 안 준다고 서운해하지 않는다. 필요한 사람이 하면 된다.

밥을 누가 하느냐가 핵심이 아니다. 아직도 살림은 여자의 몫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