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대 칼럼] 구두병원
[이종대 칼럼] 구두병원
  • 충청매일
  • 승인 2022.07.1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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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충북 진천에서 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그때 나는 청주와 진천을 오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출퇴근하였다.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려면 읍사무소 근처에 있는 정류장까지 걸어야 했다.

그런데 길 중간에는 직접 들르거나, 한 번쯤 잠시 바라보고라도 가야 하는 곳이 있었다. 바로 초등학교 동기생 광수가 운영하는 구두 수선소였다.

읍사무소 앞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여러 가지였다. 그날은 수선소가 위치한 곳에서 길 건너 쪽으로 걷게 되었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길 건너에서 수선소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마침 광수는 구두를 닦고 있었다. 친구의 이름을 부르려다가 순간 멈칫하였다. 구두를 닦는 모습이 너무도 진지해 보였다. 구두를 코 밑까지 바싹 당겨서는 매만지고 문지르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구두에 대한 애정 가득한 그 모습은 마치 애견인이 반려견을 품에 안고 어루만지는 듯한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광수는 내가 길 건너에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고는 계속해서 구두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마침내 길 건너까지 반짝이는 광택이 느껴질 때까지 광수의 손놀림은 멈추지를 않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었다. 손님이 맡긴 구두는 최선을 다해 깨끗하고 예쁘게 손질하려는 모습은 마치 구도자의 길을 가는 도인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친구의 모습이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도 ‘친구처럼 무엇엔가 애정을 기울이며 푹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나?’ 하는 반성의 시간도 갖게 되었다.

광수는 6남매의 맏이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병환으로 누워계셨다. 자연스레 가정 살림은 빈곤했다. 광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가장의 역할을 해야만 했다. 동생과 어머니를 위해서 못 할 일이 없었다. 여름이면 아이스케키 통을 메고 얼음과자를 팔러 다니기도 했고,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구두 닦는 일을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구두 닦는 일이 직업이 되었다. 자연히 구두를 수선하는 일도 하게 되었다. 광수는 자기가 운영하는 구두 수선소를 구두병원이라고 간판을 붙였다.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고치듯 자신도 구두를 완벽하게 고치는 일을 사명으로 알았다. 바늘에 찔리고 칼에 베일 때도 많았다.

그래도 광수는 아픈 것도 참아가며 매일같이 구두병원을 열지 않는 날이 없었다. 초등학교 동기생 중에는 학업을 위해서 또는 직장 문제 때문에 고향을 떠난 사람들도 많지만, 광수는 그렇게 고향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런데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광수에겐 광수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아내이다. 아내는 광수의 구두병원 바로 옆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한다. 호떡과 핫도그를 팔기도 하지만, 주목적은 바로 사랑하는 남편이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곁을 지키고 있다. 광수는 수선소 일이 끝나면 자율방범대원이 되어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기도 한다. 광수를 생각하면 지난 온 내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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