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절필
[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절필
  • 충청매일
  • 승인 2022.03.1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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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1930년 말 정지용 시인은 절필을 선언하고 남도로 여행을 떠난다. 남도기행과 제주도 한라산을 오르며 정지용 시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아온 정지용 시인은 감시의 눈을 피해 펜을 놓았지만, 시인이 펜을 놓고 살 수는 없었다. 정지용 시인은 남도기행 산문과 제2시집 백록담을 남겼다.

절필, 시 쓰는 일이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행위는 아니다. 그러므로 시를 쓰지 않겠다고 하는 각오도 남에게 알릴 필요는 없다. 나는 왜 절필을 고백하는가. 시 쓰기가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나 시 쓰는 행위가 허무하게 느껴질 때, 스스로 한계에 도달할 때면 여러 번의 절필을 선언하곤 했다.

첫 시집을 발간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어디에 자랑할 만한 시집도 아니고 너무 오래되어서 잊힌 지도 오래다. 굳이 시집을 내야 하는 이유도 없었고 시집에 수록할 만한 시편도 충분하지 않아 시집 출간 계획이 없었다. 몇 해 전부터 여러 지인이 닦달 할 때에도 지키지 못할 약속만 했었다.

올해는 시집을 내겠노라 다짐하고 나서 그간 써놓은 시편을 살펴본다. 시편들의 창작 시기가 너무 크다 보니 시의 일관성이 떨어진다. 버릴 건 버리고 다시 써야 할 시를 어림잡아보니 십여 편이다.

아직도 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항상 재능 없음을 핑계 삼지만, 나의 게으름도 한몫하고 있으니 누굴 탓할 일도 아니다. 어느 해는 一日一詩를 하겠노라 다짐하고 작심삼일로 그쳤다. 

기형도의 시를 다시 읽는다. 시란 무엇일까 고민이 들 때면 기형도의 시를 읽는다. 기형도 시집 ‘입속의 검은 입’은 출간했을 때, 시 좀 쓴다는 사람은 읽어야 할 경전 같은 시집이었다. 흥미를 끌 만한 유고시집이기도 했지만, 입에 입으로 소문이 돌면서 기형도의 시는 세상이 등장했다. 기형도 시는 만만치 않다.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낯선 비유와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을 탄탄한 시적 구조 속에 직조하는 시인의 능력은 읽는 이를 당황하게 만든다. 

시집 발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공모에 신청했다. 결과는 탈락이다. 떨어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무척 창피하고 화가 난다. 오로지 신청자의 시를 평가해서 선정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니 아직 나의 시가 부족하다는 결과 아닌가. 선정자 68명에 들지 못했다. 또다시 좌절이다.

‘더러 개인 신청자 중에서 정제된 형식과 개성적인 표현이 두드러지지 않은 작품이 보여 아쉬웠다.’는 한 줄의 심사평을 보며 나의 시가 고작 이 정도라니 분노와 짜증이 뒤섞였다. 스스로 결과에 승복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할 것인데, 나의 부족한 인성에 스스로 실망한다.

충청매일에 글을 쓴지도 5년이 넘었다. 격주로 쓴 원고이니 어림잡아 100편이 넘는다. 신변잡기식의 글을 쓰면서 혹여 내 글을 읽을 사람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소재가 없어 마감 시간에 맞춰 쓴 글도 많아 언제든 연재를 그만두려고 했지만, 이렇게 넋두리를 쏟아내고 있다.

이제 절필이다. 다짐이 한 시간이 갈지, 하루, 한 달이 갈지는 모른다. 정지용 시인처럼 속세를 떠나 여행을 계획하던지, 아니면 기형도 시집을 다시 읽으며 마음을 다져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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