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배웅
[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배웅
  • 충청매일
  • 승인 2021.12.0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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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세월이 참 빠르다는 말을 많이 한다. 어느 순간 되돌아보면 지나온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의 순간을 맞닥트린 것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늘 그랬다. 한 해가 저무는 12월이면 지난 일 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연초에 계획했던 일은 잘되었는지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서울 가는 아들을 배웅하기 위해 오송역에 갔다. 보통은 차에서 내려주고 돌아오곤 했는데, 그날은 무슨 심사가 들어선 지 기차 플랫폼까지 동행했다. 오래전 조치원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풍경과는 다른 낯선 역의 모습과 시스템을 신기해하며, 사진도 찍고 지나가는 기차도 구경했다. 서울행 기차가 들어오고 아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며 기차에 오르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기차 너머 붉게 물드는 노을 때문이었을까. 먼데 가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도 아닌데, 출발하는 기차 창문으로 손을 흔드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언젠가는 이별의 순간이 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웅이란 둘이 왔다가 혼자 돌아가는 쓸쓸함이구나. 멀어지는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게 되는 서운함이구나 생각했다.

고향 앞집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몇 해 전부터 부쩍 야위시고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갑작스러운 부고에 마음이 심란하다. 재작년 엄마가 돌아가시고 뒷집 아저씨 그리고 앞집 아주머니까지 돌아가시니, 수몰로 몇 집만 남아 있는 고향마저 영원히 사라질 것만 같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 청주로 나오던 날,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버스에서 나는 멀어지는 마을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집을 떠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던 나이였지만, 지금도 그때의 풍경과 감정이 잊히지 않는다.

자식들 객지로 떠날 보낼 때, 부모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수많은 이별을 어찌 견뎌내셨을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 앞에 어린 나는 이렇다 할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엄마에게도 끝내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배웅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우주의 이치이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니, 해가 저물고 새해가 오는 일이 무슨 대수인가.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일상에선 2021년이나 2022년이나 마찬가지인데, ‘호들갑 떨 것 없다’ 치부하며 지내온 세월이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과 이별하지 못했다. 소중했던 나의 사랑과 아픔을 배웅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제 2021년과의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누군가는 크리스마스에 들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연말연시 행사에, 마무리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별을 준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몇 번인가 이별을 준비했으나 배웅을 받지 못한 나날이 많아질수록 이별의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비겁하게 외면하거나 합리화하며 피할 이별이 아닌 것을, 그간 대수롭지 않게 살아온 나날을 배웅하고 돌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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