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오디션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오디션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충청매일
  • 승인 2021.11.09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예술가의 가치가 대중성에 있다면, 모든 예술은 획일화되고 단순해질 것이다. 철저한 자본 논리로 운영되는 방송은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고 시청률을 높여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자 한다. 이미 세계적 반열에 오른 K-Pop은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대중성이 곧 예술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이라는 분야는 자본의 가치로 환원되거나 값을 매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를 통해 배출된 스타들은 1980~1990년대를 풍미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아이돌의 시대에 밀려 흘러간 옛노래가 되었지만, 최근 과거의 노래가 다시 인기를 얻으면서 TV에서 볼 수 없었던 가수들이 종종 얼굴을 비춘다.

가요제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오디션의 시대가 문을 열었다. 방송국은 앞다투어 오디션 프로를 신설하고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애써왔다. 최근 오디션 프로는 TV조선이 단연 앞서고 있다. 전 국민의 폭발적 인기를 얻었던 트로트에 이어 최근에는 국민가수라는 새 프로를 통해 이슈 몰이를 하고 있다.

첫 출연부터 이슈가 되었던 출연진 박창근은 노래 실력에 놀라기도 했지만, 예전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정치적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기가 생기면 온 가족을 탈탈 터는 정치권처럼 갑작스러운 주목에 노래 외길인생을 걸어온 가수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이전 수많은 오디션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가수 박창근은 무슨 이유로 TV 앞에 섰을까. 예술가의 자존심은 상업적 오디션을 거부한다. 성공하고 싶은 젊은 뮤지션들의 무대였던 오디션에 이미 실력이 검증된 무명의 가수들이 참여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작가들은 프로그램 성공을 위해 참가자를 물색하고 섭외하는 일은 다반사다.

심사위원의 면면을 보면 더욱 놀랍다. 과연 누가 누구를 심사하는지 의심이 드는 오락프로 수준의 오디션을 보면서 복잡미묘한 심정이 들기도 한다. 특히, 국악이나 소리꾼들을 대상으로 하는 오디션 프로의 출연진 면면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국악계에서 한 획을 그은 출연진들이 국악을 버리고 대중가요를 부르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즐거워하지만, 이렇게라도 무대에 서야 하는 출연진의 심정을 생각하니 왠지 씁쓸해진다. 국악에 국자도 모르는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평가를 받아야 할 정도로 국악이 대중 앞에 설 자리가 없단 말인가.

누군들 인기와 부를 얻고 싶지 않겠는가. 모든 예술가는 나의 예술을 많은 대중이 알아주길 원한다. 연극이든 노래든 춤이든 글이든 무명은 먹고 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수많은 예술가 앞에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오만일 수 있다. 평생 가수를 빛내는 역할을 해오던 춤꾼들이 오디션 프로를 통해 얼굴이 알려지면서 몇몇 춤꾼들이 백댄서가 아닌 개개의 존재로 주목받고 있다.

오디션 프로를 통해 무명의 세월을 청산하고 스타가 되기도 하고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일은 좋은 일이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1%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1%가 된다면 성공한 인생이 된다. 프로그램의 인기도와 방송사의 지원 여부에 따라 누군가는 스타가 되기도 하고 대다수 출연진은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오디션 프로는 끝없이 생산되고 성공을 꿈꾸는 참가자도 끊임없이 생산된다. 출연료가 들지 않으면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예술인이, 예술이 자본 앞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