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예술 소비
[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예술 소비
  • 충청매일
  • 승인 2021.09.2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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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종일 비가 오락가락한다. 여름이 곧 물러날 기세이지만, 저녁 해는 아직 중천이다. 날씨 탓인지 퇴근길 저녁이 일찍 찾아오고 있다. 여느 때와 달리 가로등도 일찍 켜지고 도로 위 물웅덩이에 도심의 불빛이 흐릿하게 내려앉았다. 이런 저녁이면 누구라도 시인이 되겠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오고 심연에서부터 쓸쓸함이 올라온다. 낯선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다 작은 선술집에 들러 취하고 싶은 날이다. 지나는 모든 이와 어울려 어둠의 정체에 대해, 저녁의 풍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날이다. 모든 감각이 깨어날 때는 감각을 소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터져버리거나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흘려버리고 만다.

종일 몇 마디의 이야기를 나누고 살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몇 번이나 웃으며 하루를 보낼까. 마음에 쌓인 수많은 이야기를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말이 적은 편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침묵에 익숙해질 나이도 되었지만, 사람 사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듯,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을 때 침묵은 독화살이 되어 날아온다. 또 누군가는 끝도 없이 이야기를 건넨다. 질문하지 않아도 알아서 대답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감정을 소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표현이다. 말이 없는 나도 화가 나는 일이나 짜증 나는 일이 있을 때는 말이 많아진다.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화가 가라앉는다. 그렇다고 마냥 떠들 수만은 없다. 아무 말이나 들어주는 이도 많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통해 감정을 소비할까. 어떤 방법으로 든 표출이 되어야 한다.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저녁이면 지인과 술잔을 기울이듯이, 주말이면 들로 산으로 떠나듯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쇼핑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면서 일상의 궤도를 일탈하고자 한다.

저마다의 방식이 있겠지만, 예술 행위를 통해 감정을 소비하는 이는 많지 않다. 직업으로써의 감정 노동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예술로 밥 먹고 사는 이들은 노래로, 춤으로, 몸짓으로, 글로 감정을 표현하며 살아간다. 예술가의 감정 소비로 탄생한 예술은 소비자가 있어야 한다.

슬픈 영화를 보며 펑펑 울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지듯이, 예술은 대리 감정 소비가 가능하다. 감정 소비를 위해 공연장을 찾고, 전시 관람을 하는 행위가 곧 예술 소비이다. 예술을 보기 위해 돈이 지출되는지와 관계없이 공연장으로 향하는 행동 자체로 예술 소비가 이뤄진다.

청주의 예술 소비는 어떨까. 코로나 19로 한없이 위축된 예술계는 온라인 공연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무명의 온라인 영상에 관심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어쩌다 있는 대면 공연도 마찬가지다. 소비가 없다고 수요자만을 탓할 수는 없다.

이제는 예술소비촉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최근 놀이를 통해 상금을 획득하는 드라마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거대 자본은 전 세계 소비자를 겨냥한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관심 없는 사람도 소문을 듣고 찾아보게 될 정도이다.

반면, 지역 예술계는 기업이나 방송국처럼 홍보 시스템이 없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지만,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에도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다. 예술소비촉진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관의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회성 공연비 지원도 중요하지만, 수요자의 구매 의욕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지 않더라도 지역 방송국과의 연계 방안도 있을 것이고 거리 전광판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가 오려는지 날이 꾸물꾸물하다. 이런 날은 감정 소비자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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