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 대하소설 북진나루]제15부 북진여각 막을 내리다(1038)
[정연승 대하소설 북진나루]제15부 북진여각 막을 내리다(1038)
  • 충청매일
  • 승인 2021.04.1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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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이제야 나라에서도 나를 양반으로 알아주니 난리도 한 번 일으켜볼만 하구려!”

좌군장 이창순이 굴하지 않았다.

“양반으로서 임금의 은혜를 입었으면 그것을 갚는 것이 도리이거늘 은혜도 저버리고 오히려 반기를 들었으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안핵사 영감! 나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소! 아비가 아비 노릇을 못하고, 임금이 임금 노릇을 못한다면 자식이라도 나서서 집안을 일으키고, 백성이라도 일어나 폐단을 고치는 것이 사람 된 자 도리가 아니겠소?”

“네놈이 죽을 때가 되니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가 보구나! 아비가 잘못했다하나 천륜이 엄연하거늘 어찌 자식이 아비를 거스를 것이며, 하늘이 내린 임금을 어찌 백성 된 자가 능멸할 수 있겠느냐?”

“하늘이 내린 임금이 하늘의 뜻을 저버리고, 임금의 명을 받고 백성을 보살피러 온 자가 명을 어기고 사리사욕만 채우는 데도 임금이 벌주지 않는다면 백성이 누구를 믿고 따른 답디까? 청풍부사 조관재는 도처에서 고을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데도 이를 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고을민의 주리를 틀어 탐학하고 자신의 기름진 배만 더욱 불렸으니 그를 원이라 해서 어찌 무조건 따를 수 있겠소이까? 나는 그런 조관재를 혼줄 낸 것이 자랑스럽소! 외려 농민도회장에서 고을민의 이름으로 때려죽이지 못한 것이 분할 뿐이외다!”

“네 이놈! 백성된 신분으로 어찌 함부로 관리를 치죄한단 말이더냐?”

안핵사 연창겸은 농민군들을 취조하면서도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예전 같으면 농민들이 감히 관아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반란을 일으켰다가 관아에 잡혀왔음에도 자신들의 죄를 전혀 뉘우치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 연창겸 안핵사를 놀라게 했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빌며 살려달라고 읍소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당당했기 때문이었다. 농민봉기에 참여했던 농민이나 천민이나 모두가 한결같았다. 봉기에 참여한 대부분의 고을민들이 전혀 자기의 행위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 자부심까지 보였다.

“넌 노비로서 토구가 되어 배은망덕하게도 주인을 장살했는고?”

이번에는 안핵사 연창겸이 사노군장 양태술에게 물었다.

“자식과 남편이 있는 멀쩡한 남의 여편네를 억지로 빼앗아 첩으로 삼은 양반을 어찌해야겠소이까? 소작인들 마누라나 여식들 고쟁이 벗기는 것을 장죽에 담배 재우듯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양반을 어찌해야겠소이까? 그런 것들도 양반이라고 받들어야 하는 세상을 그냥 살아야겠소이까? 나는 노비라 몰라서 묻는 것이니 서책을 많이 읽은 높으신 안핵사 영감께서 양반님네 법도 좀 알려주시구려.”

“네, 이놈!”

안핵사 연창겸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호령만 했다.

“난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짐승을 죽였을 뿐이요!”

사노군장 양태술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죄책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나라에는 엄연한 국법이 있거늘 모두가 사사로이 치죄를 한다면 백성들이 불안해서 살 수 있겠느냐?”

안핵사가 양태술에게 국법을 운운하며 위신을 세우려 했다.

“그건 양반님네들 생각이오. 국법이 우리 같은 상놈들에게 무슨 소용이오? 양반님네만 국법을 잘 지키면 백성들은 불안할 까닭이 전혀 없소이다. 그러니 그런 법은 양반님네나 잘 지키라고 하시구려!”

양태술이가 비아냥거렸다.

“네놈이 죽기를 작정했구나!”

안핵사가 호통을 쳤다.

“지금 당장 목이 날아간다 해도 난 이제 아무 여한이 없소. 그러니 어서 내 목을 치시오! 이제껏 살아오면서 요새처럼 할 말 다하면서 살맛나는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소.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인간 같지도 않은 양반지주 놈들 하나라도 더 죽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원통할 뿐이외다!”

죽음이 목전에 있는 대도 사노군장 양태술은 허허거리며 웃었다. 안핵사 연창겸은 자신들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천연덕스러운 농민군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넌, 농민군 괴수로서 할 말이 없느냐?”

안핵사 연창겸이 마지막으로 농민군대장 우장규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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