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무명(無名)
[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무명(無名)
  • 충청매일
  • 승인 2021.02.1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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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죽은 후 이름을 남길 수 없다. 생전에 공인이었던지, 공을 세워 죽었던지 둘 중 하나여야 한다. 세종대왕, 이순신처럼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나 이완용 같은 악인이 되어야 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 수명을 다하거나 지병이거나 사고로 인해 명(命)을 달리한다. 생전 얼굴 한 번 못 본 이의 부고를 듣거나 간혹 안타까운 지인의 죽음을 접하기도 하지만, 대중매체는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 또는 기업인의 죽음만을 다룬다. 만나본 적도 없고 서로 안부를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그들의 죽음은 대중의 관심사다. 유명인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름 석 자 알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아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다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대단해 보일까.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이 종영했다. 실력이 검증된 무명 가수들이 출연해 경쟁하는 프로였다. 준결승 진출 전까지 이름을 숨긴 채 번호로 불리며 방송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 이미 얼굴이 알려진 가수들도 참여했다. 노래는 알지만 이름은 생소했던 가수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나왔다. 방송의 순수성을 믿을 수 없지만, 무명 가수전 아이템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 특히 젊은 예술인이 지역에서 버티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경우를 많이 접했다. 반대로 다른 지역에서 청주에 정착했다가 다시 청주를 떠나는 예술인도 많다. 지역에서 수년, 수십 년 동안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예술인은 유명해지는 것에 대해 무던해 보이지만, 젊은 층의 생각은 다르다. 많은 것을 희생하며 걸어온 예술의 길이 순탄치 않고 돈벌이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공인 예술인이 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의 희망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서울이라고 지역 예술계와 다르지 않다. 수많은 꿈이 이뤄지기에는 시장이 작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술계는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축제가 없어지고 무대가 없어지면서 예술 행위 자체가 없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름 없는 예술인들을 걱정해주는 이도 드물다. 그런데도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무명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밖에 없다.

장호정, 정민, 진유리, 박주현, 김강곤, 최경숙, 류기행, 이은지, 연수연, 정지영, 안희주, 김재천, 김명진, 김철준, 김민지, 나호원, 권유정, 여승헌, 이연수, 이진웅, 정은정, 김학민, 심준보, 나장흠, 구본행, 도경림, 조애정, 송수아, 이석규, 최연정, 정환진, 최범락, 한성녕, 김민경, 윤지훈, 신태희, 김선구, 김선경, 전아름, 김혜진, 조현미, 김이슬, 황근숙, 전예슬, 백종원, 김명신, 김유식, 김지영, 박선요, 배승진, 김한성, 신동국, 김보영, 서동율, 김태철, 진향래, 곽은혜, 이지안, 김은비, 이은송, 권보희, 오세아, 김보경, 이성희, 서영란, 여인영, 이소리, 우미경, 정동박, 한명일, 문호영, 김옥희…….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예술인에게 미래는 없다. 오롯이 예술의 길을 선택하고 묵묵히 그 길을 걷고 있는 예술인의 몫이다. 그리하여 무명의 예술인들로 인하여 세상이 살만해지는 것이다. 모든 무명 예술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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