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100년 전, 오늘을 생각하며
[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100년 전, 오늘을 생각하며
  • 충청매일
  • 승인 2019.03.0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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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국가란 무엇인가. 태어나 살고 있는 곳, 법의 테두리 속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지키며 살고 있는 곳이 국가일까. 나는 어쩌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을까. 대다수 서민을 위해 국가는 안전과 행복을 책임지고 있는가.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며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목숨을 바칠 수 있는가. 병역의 의무를 마쳤고 납세의 의무도 지키며 살고 있는 나에게 국가는 낙인 같은 주민등록증 하나를 던져주고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힌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나라는 몇몇 정치인의 손에 좌지우지되며 그 꼭대기에 신처럼 존재하는 자본가들은 어떠한 변화도 원하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희생은 국민의 몫이다. 

1636년, 매서운 눈보라를 뚫고 청은 순식간에 남한산성을 에워쌌다. 성안에 갇힌 조선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에 직면했다. 청과 화평 교섭을 진행한 최명길과 죽음으로써 삶을 구원할 수 있다는 반대파의 언쟁은 지리멸렬했다. 백성은 배곯아 죽고 얼어 죽어 가는데 임금은 어떠한 결정도 하지 못했다. 백성은 죽음을 견디며 적과 싸우고 싸웠다. 그러나 전쟁에 패했다. 

우리의 역사는 침략과 굴욕의 연속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일제는 우리의 통치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삼았다. 우리는 수많은 외침을 받았지만, 국권을 상실한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을사오적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이들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오래지 않은 역사, 친일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친일파는 교묘하게 위장해 정체를 쉬이 드러내지 않는다. 

1919년, 임금도 당상도 신료도 아닌 백성들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을 외쳤다. 전국 각지에서 태극기의 물결이 흘렀고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죽음의 길로 뛰어들었을까. 나라 잃은 슬픔은 눈물 한번 훔치며 그만인 것을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낸 힘은 무엇일까. 1950년, 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다. 해방 이후 남과 북, 두 정권은 전쟁의 비극과 국토 분단의 역사만을 남긴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이 깨졌으며, 나라의 분열을 초래했다. 우리는 전쟁의 아픔을 딛고 빠르게 성장했지만, 비민주적이고 비인권적 사회를 만들었다. 권력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 희생을 강요했고 전쟁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해냈다. 그때마다 국민은 거리로 나섰고 맞서 싸웠다. 옥체를 보전해야 나라가 살 수 있었던 시대에는 임금을 위해 싸웠지만, 국민이 행복해야 나라가 사는 세상에는 국가 권력과 싸워야 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권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촛불은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비폭력 저항의 상징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한 국민의 권리행사이다.

2019년, 100년 전 오늘을 기념하며 전국에서 태극기를 들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들고 애국을 외치던 손에도 촛불을 들고 국민의 권리를 외치던 손에도 모두 태극기를 들었다. 너와 나의 손에 든 태극기가 다르지 않듯 그 의미 또한 같은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100년 전 그랬듯이, 500년, 1천년 전 나라의 위태로움을 이겨낸 이들이 있었듯이 국민은 국가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은 국가를 위해 책임과 의무를 기꺼이 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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