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의 山城 山寺 찾기]임존성(任存城)은 복원 중
[느림보의 山城 山寺 찾기]임존성(任存城)은 복원 중
  • 충청매일
  • 승인 2016.12.1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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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충북수필문학회장

성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문이다. 남문은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정남쪽은 구릉이라 성내로 통하는 정문이 될 만한 길을 낼 수 없었을 것 같았다. 남문을 정문으로 본다면 정문 치고는 좁은 편이다. 그런데도 문의 양쪽을 바깥쪽으로 튀어나오게 쌓았다. 마치 작은 치성(雉城) 같았다. 서쪽 성벽은 7~8m 정도로 상당히 높아 보였고 거의 원형이 남아 있었다. 고증이 어려웠는지 서쪽 성벽을 복원하면서 이곳 치성 부분은 그냥 두어서 무너지기는 했지만 다행히 옛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성벽에 잡초가 우거져 있다.

문지를 지나니 올라가면서 동쪽으로는 큰 건물이 있었는지 대지가 넓다. 안내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건물은 한두 동이 아니라 큰 건물 작은 건물이 밀집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여기저기 기와편이 보였다. 주건물, 부속 건물, 망대가 있어 이곳이 대련사와 통하고 외부와 연결되는 중심 통로가 아닌가 한다. 대개 건물이 성의 중앙부에 있는데 비해 임존성은 남문 부근에 있던 것으로 보여 특이했다.

축성 방법을 살피기 위해 아직 원형이 유지되고 있는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산딸기 덩굴이 얼굴을 후리더니 가시덤불이 바지를 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멀리 이곳까지 와서 죽은 당나라 군사의 원혼은 아닐까. 백제를 그리는 내게 반감을 드러내 보이니 말이다. 옛 축성의 방법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원형이 유지되어 있었다. 반갑다. 축성에 쓰인 성석은 화강암으로 단단하고 무직해 보였다. 높이는 3~5m 정도이고 성루 위쪽의 너비는 2m쯤 됐다. 성석은 일정하지 않고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너비가 60~90cm, 두께가 30cm 정도 되는 큰 돌도 있었다. 이렇게 크고 작은 돌을 엇갈리게 쌓았고 중간 중간 쐐기가 될 만한 작은 돌을 끼워 넣어 쉽게 무너지지 않게 했다.

성벽은 바깥을 돌로 쌓은 다음 안쪽 속을 단단히 다지는 이른바 내탁외축(內托外築) 방식으로 추정된다. 돌의 너비나 두께는 일정하지 않아도 돌을 다듬어 썼다.

다시 성벽 위로 올라와 산책로처럼 말끔한 서쪽 성벽 위를 걷는다. 여기부터 멀리 보이는 망루5까지는 최근에 복원한 모습이 뚜렷하다. 본래의 축성법에 따라 복원하려고 애쓴 흔적도 보이고, 옛 모습이 남아 있는 곳 20m 정도는 그냥 보존한 곳도 있다. 말끔하게 단장된 성이 달갑게 보이지 않는 것은 옛 성에 대한 나의 집착인지도 모른다.

새로 쌓은 성벽 위를 걷는 것은 산책 이상의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전망 좋고 볕이 따뜻한데다가 잔디가 잘 자라 길이 폭신해 걷기에 좋았다. 이곳에 백제복국운동기념비와 제단이 마련돼 있었다. 아마도 백제 부흥군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는 모양이다. 제단의 규모로 보아 세종시 비암사에서 시행하는 백제대제처럼 큰 행사는 되는 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제사는 규모가 크든 작든 정성을 다해야 한다. 옛 성의 복원도 성벽만 다시 쌓을 것이 아니라 성에 묻힌 역사를 복원해야 한다. 임존성은 복원 중이다. 성벽이든 전쟁의 흔적이든 백제 유민의 정신이든 제대로 복원되기를 간절히 빌며 묘순이 바위로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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